[천년학 & 밀양] "구원"이 되어주는 사랑

사실 요 며칠 블로그에 새글이 오르지 못했었습니다. 글이란 것은 생각의 실타래와도 같아서 한번 엉키기 시작하면 좀처럼 풀어내기가 쉽지 않게 마련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 '아~무 이유 없이' 잠시 쉼표 하나를 찍어두었던 블로그로 돌아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 볼까 고민하다 다시 접고 하기를 몇 번.

사실 얼마전 극장에서 저희 에이콘 식구들, 저희 에이콘과 형제사와 다름없는 디오이즈 가족, 새로이 저희와 일을 시작하신 저자분들, 대군단이 모여 "천년학"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와서 사실 블로그 글을 끄적였지만 왠지 붕 뜨기만 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블로그 오픈 후 처음으로 글을 비공개로 돌려놓고 마무리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늘 주위 분들이 말씀하시는 팀 블로그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며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제 밤 "밀양"의 주연 여배우 전도연씨가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탔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모든 미디어를 장식했습니다. 그 때 문득 블로그에 써두었던 이 글의 제목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구원"이 되어주는 사랑
그래서 오늘은 며칠 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던 블로그에 잠시 영화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써두었던 글은 거의 다시 날려버렸지만 제목 만으로도 다시 되살려보는 기억입니다.

<사진 설명 "밀양" 중에서 -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모든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기에 영화 "밀양"에서 송강호가 나오는 한 장면을 올립니다. 거대하고 고결한 절대세계에 견주어볼 때 '보잘것없는 인간이 진정으로 남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죠.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한 인간의 속내를 보여주었기에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가장 사랑스러웠습니다.>

실상 "밀양"과 "천년학"은 어떤 의미로 따진다면 전혀 교집합을 찾을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이라는 말로 묶어 보면 어떨까요. 실상은 천년학에서는 久遠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할 테고 밀양에서는 救援의 문제였음이 조금은 다르겠지만 말이죠.

서편제의 후일담처럼 이어지는 "천년학"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잊혀져가는 우리네 산천과 소리와 얼을 되살린 영화임은 맞습니다. 깊은 색감, 어떤 영화에서 저런 풍성한 색감을 만나볼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유려한 영상, 오히려 기존 영화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다양한 씬 전환, 판소리로 이야기의 맥락을 이어나가는 연출력 등. 유영하듯 움직이는 카메라와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 탄피로 만든 반지를 곱게 간직하며 겉으로 내뱉을 수 없는 깊은 애절한 사랑을 지나가는 개천에 토해내는 눈먼 송화의 애틋함이란. 하지만 천년학에서 더욱 빛을 발했던 건 궁핍한 현실 속에서 동호(조재현 분)에게 늘 久遠과도 같이 다가오는 송화(오정해 분)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사진설명 "천년학" 중에서 - 한 장면 한 장면 버릴 것이 하나 없었던 거장의 영화 "천년학" 중에, 벚꽃이 흩날리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는 손꼽을만한 씬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빛으로 시작해 구석진 땅에 비추는 빛 한 줄기로 마감을 하는 영화 "밀양"은 어땠나요. 어떤 아픔에도 비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 앞에서 신음하는 한 여자의 여린 영혼을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어느 하나로 단순화할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약한 모습에 가슴이 잠시 저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 앞으로 나서지도 않고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없는, 늘 한 발 물러서 바라보고 마음을 공감해주는 종찬(송강호 분)의 한결 같은 마음이 신애(전도연 분)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救援과도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훗날 돌이켜본다면 말입니다.

천년학에 나오던 송화의 판소리 하나가 늘 마음에 잔영처럼 남아있습니다. 잠시 찾아서 남겨봅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련만.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야하는 꿈, 꿈을 깨어서 무엇을 허니...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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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혹| May 31, 2007

    이런. 이런 명문에 1등을 하네요.. ㅋ <구원>이란 컨셉을 아주 잘 병치시켰네요. 살짝 부러워집니다.
    첫번째 사진은 송강호의 재롱인 모양이네요. 좋은 감상글은 꼭 펌프질이라는 사태를 유발하는군요.

  • 에이콘| May 31, 2007

    졸필에 늘 용기 북돋워주시는 매혹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찬을 해주시니 좀 송구스럽군요. ^^;
    첫 사진은 스틸컷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싶지만 한번 찾아보세요. 밀양은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영화이긴 하지만 마음을 열고 보신다면 분명히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 -bliss

  • yuna| Jun 11, 2007

    아 웬지 눈물이...:-0
    밀양 빨리 봐야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