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콘은 마감중] 글 고르기
Oct 23, 2006지금 에이콘은 SOA 편집 마감중입니다. 갑자기 얼마 전 본 영화 라디오 스타의 대사 몇 마디가 떠오르는군요. (뭐, 지금 이 정신에 정확한 대사를 기억해낼 것을 요구하지는 말아주시구요... --; )
* 최곤 매니저(안성기분): "오후의 희망곡보다는 오후의 리퀘~스트, 이게 좀더 멋지지 않아?"
# 라디오 PD(최정윤 분): "요새는 영어 들어간 말이 더 촌스럽다구요!"
* 최곤 매니저: "그럼 그냥 오후의 희망곡보다는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최곤은 꼭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 라디오 PD: "'의'가 두 번이나 들어가니까 이상하잖아요!"
결국, 그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 그냥 '오후의 희망곡'이었던지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냈냐구요? 공을 들여 책을 편집하는 일은 이렇게 펄떡펄떡 살아움직이는 글을 쉬지 않고 하나씩 매만져야 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저희 에이콘이 펴내는 책들은 대부분 컴퓨터 개발자 분들을 위한 기술서여서 코드 하나 용어 하나에도 머리카락을 쭈볏 세우며 난상토론을 거쳐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디자이너들도 인문서와는 달리 서체 하나, 코드 하나를 만져야 하고, 들어가고 나올 데(!)를 정확히 구분해줘야 합니다. 오늘도 파스 투혼을 벌이는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영광을 돌리며.ㅡ.ㅡ
그런데! 이번 SOA: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 책은 SOA에 대한 바이블이라 할 만큼 온갖 어려운 개념과 싸움을 해야 합니다. "상상한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듯이 원서 자체도 어렵거니와, 거의 처음이다시피한 800페이지 가량의 SOA서적이다 보니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려옵니다.
그야말로 코드 없는 원고의 글자들이 살아 움직여 저희에게 선전 포고를 해온 거죠. 이 책은 역자분들이 거의 수개월 동안 합숙 못지 않은 스터디를 거쳐 머리 싸매고 논의해서 번역하셨습니다. 게다가 저희 편집팀과의 최종 리뷰 과정에서 용어를 통일하고 문장을 다듬어내고, 열혈 역자분들이 몇 주 동안 원고를 이미 '한번' 엎은 후에 맥 편집을 했는데도, 이 살아 움직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활자들은 애꿎은 원고를 빨갛고 푸르고 파란 온갖 색으로 도배를 하게 만드는군요.
교정지를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벌이는 활자들과의 한판이 "책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가을날의 스산한 밤기운을 등에 업고 몇 자 적어봅니다. 편집의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고운 채로 흔들어 골라 쭉정이는 다 빼내고 곱디 고운 애들만 남겨야 할 텐데요. 다른 직원들 다 막판 마무리에 열심인데, 잠시 딴짓 모드였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오늘도 느꼈습니다. 에효.. 수월하게 넘어가는 책이 없네... 아, 블로그 글 쓰느라 몇 분을 또 소비했으니 어서 어디로 튀기 전에 글 고르러 가야겠습니다.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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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많으십니다. 역시 기술서 번역은 용어와 한글화 했을때의 이상한 운율(~의 ~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java lang spec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어서 역자 미팅 날짜 잡아 알려주세요.. ^^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이었죠.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글, 온갖색으로 도배, 곱디 고운 애. 하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인문쪽 책을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들어가고 나올 데(!)에는 느낌표를 해서 글쓴이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물론 중의적인 표현이겠지만요.
웅이님, "최곤의!"였군요. 왜 기억이 가물가물한지ㅎ
저희 블로그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나 "게임회사 이야기" 등 저희 책 중에 웅이님도 재미있게 읽으실 책이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펴낼게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
저도 영화에서 '의'로 다투는 거 보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ㅋ